4,000m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파미르 고원의 삶과 기후 변화

4,000m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파미르 고원의 삶과 기후 변화




🗻 파미르 고원, 고립된 지형이 만든 독특한 문명

파미르 고원은 중앙아시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중국, 키르기스스탄에 걸쳐 펼쳐진 해발 4,000m 이상 고산지대입니다. 이곳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릴 정도로 높은 고도와 거친 지형을 자랑하며, 자연적으로 고립된 환경 덕분에 자연 생태계와 인간 문화가 독립적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제가 파미르에 머물렀을 당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지역 주민들이 여전히 파미르어라는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소통은 어렵지만, 그들의 표정과 제스처에는 분명한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이곳의 동부 지역은 유목민 생활이, 서부 지역은 농경 문화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주민들은 자신들을 ‘파미르인’이라 자칭하며 전통과 언어, 복식을 소중히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 기후 변화, 파미르의 생존을 위협하다

최근 수년간, 지구 온난화의 영향은 파미르 고원에도 심각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고산지대 특유의 식생이 바뀌고, 예전에는 없던 식물들이 자생하는 모습이 확인되고 있죠. 놀랍게도 2050년까지 파미르 빙하의 45%가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습니다. 기온이 오르면서 빙하가 급격히 녹아내리고, 이는 계곡 마을에 홍수 피해를 유발할 수 있어 주민들은 늘 불안 속에 살아갑니다. 저는 발탕 계곡 마을을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삶을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두꺼운 돌벽으로 집을 지어 혹한을 대비하고 있었죠. 기후 변화로 인한 영향은 단지 자연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가축 사육 방식, 계절 이동 시기, 식수 확보 방식까지 전반적인 삶의 틀을 흔들고 있습니다.




🐂 약크와 함께하는 유목민의 삶

파미르 고원의 주요 생계 수단은 유목이며, 그 중심에는 약크(Yak)가 있습니다. 약크는 고산에서만 자라는 특수한 가축으로, 이들의 젖과 털, 고기는 유목민들의 생존에 있어 필수적인 자원입니다. 그러나 모든 주민들이 약크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축은 자산이자 생명줄이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가축을 돌보는 대가로 품삯을 받아 살아가기도 합니다. 제가 만났던 한 유목민 여성은 약크 젖으로 만든 수즈마(Suzma)라는 신선한 치즈를 내어주며, “겨울이 오면 우리도 다 같이 겨울잠을 자는 듯이 조용히 지낸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평온 뒤에는 늑대와 눈표범의 습격이라는 현실적인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 생존을 위한 연료, 그러나 생태계엔 위협: 테레스캔

파미르 지역에서 연료로 사용되는 테레스캔(Terexken)이라는 관목 식물은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존 자원입니다. 하지만 지나친 채취는 토양 유실과 생물 다양성 감소로 이어지고 있어 생태계에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테레스캔은 뿌리가 얕아 뽑기 쉽지만, 환경 안정에 기여하는 식물입니다. 어린이들까지 함께 수풀 속을 헤매며 이를 캐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한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지속 가능한 대체 연료가 없다면, 이 고원 생태계는 빠르게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몇몇 NGO 단체들이 대체 연료 도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정착까지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 청동기 시대부터 살아온 흔적, 암각화 유산

파미르 고원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살아온 땅이며,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가 그 증거입니다.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며 바위에 새겨진 그림은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던 이들의 정신 세계와 생존 방식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한 벽면에는 눈표범과 약크, 그리고 활을 들고 있는 인간이 새겨져 있었는데, “사냥은 단지 식량 확보가 아닌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였다”고 안내인이 말하던 순간이 기억에 남습니다. 19세기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도 이곳 파미르에서 치열하게 펼쳐졌습니다. 지금도 경계선이 애매한 지점들에는 그 시기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 자연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

파미르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자연 속에서 자라고, 가축 돌보기, 테레스캔 채취, 고산 식물 구별하기 등을 생활 속에서 배웁니다. 학교가 있더라도 눈이 오면 휴교는 일상이며, 교육보다는 생존이 더 큰 배움이 되는 셈입니다. 아이들은 장난처럼 말하지만, 늑대가 나타났던 이야기, 겨울철 외출 금지령, 아버지의 약크 잃은 날 등 그들의 삶은 모험과 생존의 연속입니다. 이런 생활은 우리 도시의 삶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만큼 자연과 인간이 밀접하게 연결된 삶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 지구 반대편에서 배운 생존의 철학

파미르 고원은 단순한 오지 탐험의 대상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 문화 다양성, 지속 가능한 생존을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불편’이라 느끼는 것들이, 이들에겐 ‘당연’이자 ‘자연’일 수 있습니다. 이 고산 지역을 떠나며 저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곳에 살게 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바꿔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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